이형근 청주시 서원구 세무과 팀장

▲ 이형근 청주시 서원구 세무과 팀장

공공 서비스는 행정이 제공하는 ‘절차’가 아니라, 시민이 실제로 느끼고 경험하는 ‘경로’로 평가된다. 민원 절차 개선은 단순히 처리 속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민원인이 겪는 전체 흐름을 시민의 눈높이에 맞춰 설계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자체적으로 시스템을 점검하고 끊임없이 개선하는 행정이 진정성 있는 서비스이다.
민원인의 하루 여정을 예로 들어보자. 인터넷 검색으로 행정기관을 찾고, 관련 서류를 출력하거나 모바일 신청서를 작성하며 접수창구에서 대기 번호표를 뽑는다. 공휴일이나 마감 시간 직전 방문 시 민원대가 붐비고, 안내 문구가 어렵거나 담당자 위치를 찾기 힘든 경험은 불편 그 자체다. 이러한 불편은 한두 개의 창구나 문서만 개선해도 눈에 띄게 줄일 수 있다.
공직자는 이러한 여정을 여러 관점에서 재구조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신청서 한 장도 서식이 아닌 간단한 질문 형태로 바꾸고, 단계별 필요 서류를 미리 안내하며, 갱신이 가능한 민원 등은 자동 연장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민원인의 눈높이에 맞춘 서비스가 된다. 조치 후에는 ‘처리 상황 SMS 안내’, ‘처리 후 만족도 설문’ 같은 피드백도 필수다.
특히 장애인, 고령자, 외국인과 같이 디지털 접근이 어려운 대상에게는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 작성 방법 설명서를 다국어로 제공하거나, 민원 작성 도움을 위한 상담 창구, 온라인 영상 가이드 등을 통해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 관행적인 처리가 아닌, 모두가 동등하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행정이 진정한 포용이다.
공직자는 단순히 정책 실행자가 아닌, 서비스 디자이너이자 경험 설계자로 역할을 확장해야 한다. 시민 워크숍, 체험 테스트, 가상 민원 흐름 실습 등을 통해 정책의 불편 요소를 사전에 발견하고 개선하는 과정은 정책 완성도를 높인다. 직접 경험한 불편을 줄이는 것이 변화의 출발이다.
더 나아가, 민원 처리 시스템에는 정량적 수치가 아닌 정성적 체험 데이터를 반영해야 한다. 단순한 처리 건수와 소요 시간으로는 민원인의 만족도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응대 태도’, ‘문서 작성의 난이도’, ‘정보 탐색의 용이성’ 등도 평가 지표로 포함돼야 한다. 이는 단순히 응답률을 올리는 목적이 아닌, 근본적인 민원 경로의 체질 개선을 위한 출발점이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발맞춘 ‘모바일 우선’ 행정도 필요하다. 종이 서류를 기본으로 삼던 방식에서 벗어나, 민원 신청부터 결과 통지까지 전 과정이 모바일에서 구현되도록 시스템을 재구성해야 한다. 더불어 음성 기반 신청 도입, 챗봇을 통한 24시간 민원 응대 등은 시민의 편의성과 접근성을 대폭 높일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이처럼 민원인 경험 중심의 설계는 감정이 아닌 체감에서 출발한다. “처음으로 친절하게 응대받았다” 혹은 “홈페이지만으로 처리 끝냈다”는 단 한 명의 시민 이야기도 행정 전체에 전파될 수 있다. 공직자는 시스템 설계자이자 감성 관리자로서, 시민이 느끼는 온도까지 고려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행정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경험이 되고, 시민은 단순한 민원 대상이 아닌 정책 설계의 파트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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