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영 청주시 서원구 사직1동 주무관

▲ 정선영 청주시 서원구 사직1동 주무관

공공기관에서 회의는 정책 수립과 의사 결정, 부서 간 협업에 필수적인 소통 수단이다. 그러나 최근 회의 문화는 ‘효율적 논의의 장’보다는 ‘회의를 위한 회의’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안건이 없는데도 주기적으로 열리는 회의, 이메일 한 통이면 충분한 내용을 굳이 대면으로 공유하는 회의, 실질적인 논의보다 형식과 절차에 집착하는 회의는 행정의 생산성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환경에도 불필요한 부담을 주고 있다.
회의 한 번을 준비하며 사용하는 출력물, 복사기 작동에 필요한 전기, 회의 장소까지 이동하며 사용하는 차량 연료까지 모두 고려하면, 단 한 번의 회의도 결코 가볍지 않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회의용 자료를 출력하는 데 사용되는 종이의 양은 적게는 수십 장, 많게는 수백 장에 이르며, 그 종이를 생산하는 데는 상당한 양의 나무와 물이 필요하다. 회의 한 번 줄이면 나무 한 그루가 산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행정의 작은 습관 하나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크다.
많은 기관이 비대면 회의, 페이퍼리스 업무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종이자료에 의존하고, 대면 회의를 선호하는 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라기보다 인식과 습관의 문제다. 전자기기보다 종이자료가 익숙하다는 이유, 디지털 도구 활용에 대한 막연한 불편함, 그리고 이전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관성은 변화의 걸림돌이 된다.
공직사회가 환경을 진정으로 고민한다면, 회의 문화를 먼저 되돌아봐야 한다. 정말 대면이 필요한 회의인지, 협업 시스템이나 전자결재, 메신저로도 충분히 대체할 수 없는지를 사전에 검토해야 한다. 출력물 없이 화면 공유로 진행 가능한 회의는 아닌지, 참석자 전원의 이동이 꼭 필요한 일정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전 점검이 일상화된다면 불필요한 회의를 줄이고, 더 나은 의사결정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
또한 불필요한 회의를 줄이는 것은 단순히 환경을 위한 행동을 넘어 행정의 효율성 제고로도 이어진다. 회의가 줄면 업무 집중도가 높아지고, 직원 개개인의 자율성과 책임감이 강조되는 조직 문화가 형성된다. 지나치게 회의 중심적인 조직은 창의적 사고보다는 관행과 절차에 매몰되기 쉽다. 불필요한 회의 시간을 업무 기획이나 문제 해결에 사용할 수 있다면 행정의 질은 자연스럽게 향상될 것이다.
행정은 변화를 주도하는 조직이다. ‘이전에도 그랬으니 이번에도 한다’는 태도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회의 하나를 줄이는 선택이 자원의 낭비를 막고, 나무 한 그루를 지키는 일이며, 시민의 신뢰를 얻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이제는 회의도 친환경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때다.
공직자의 시간은 곧 시민의 시간이고, 행정의 자원은 사회 전체의 자산이다. 효율적이면서도 환경친화적인 회의 문화는 단순한 조직 운영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의 책임을 다하는 길이다. 작게는 출력물 한 장, 크게는 회의 하나를 줄이는 결단이 지속가능한 행정을 위한 초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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