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균 유기농업연구소 유기농업연구팀장 연구사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이 거창한 구호에 불과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기후 위기와 생태계 붕괴, 인구 구조의 변화는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현실이 됐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다양한 대안이 모색되고 있으며, 그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재생유기농업이다.
재생유기농업은 단순히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 농업'을 넘어, 토양을 회복하고 생태계를 복원하며 순환과 공존의 원리를 실천하는 철학적 농업이다. 재생농업은 토양의 생명력을 회복하기 위해 단작과 과도한 투입 중심의 농법을 지양하고, 유기물 투입·다양한 작물의 윤작·자연 생물과의 공생을 통해 땅을 되살리는 방식이다. 이러한 재생유기농업의 핵심 개념은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바로 '성평등'이라는 가치가 그러하다.
오늘날 많은 사회에서 성평등은 여전히 구조적인 차별과 배제 속에 놓여있다. 유리천장·임금 격차·돌봄노동의 전가·의사결정 구조에서의 배제 등은 우리가 이미 너무 익숙해져 있는 현실이다. 이는 마치 오랜 시간 축적된 유기물을 무시하고, 화학비료로 단기 수확만을 노리는 관행농업과 같다.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소외된 존재들은 지속적으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토양의 황폐화에서 확인했고, 사회의 불평등 구조 속에서도 보고 있다.
성평등은 사회라는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회복되어야 할 '사회적 토양'이다.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 그것은 단순히 도덕적 명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건강성과 회복력을 키우는 일이다. 재생농업이 생태계의 회복을 통해 자연의 순환을 가능하게 하듯, 성평등은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다양성과 창의성을 키우며,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
재생유기농업은 현장의 다양성과 참여를 중시한다. 성평등 역시 성별 상관없이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만드는 포용적 구조가 필요하다. 농업에서 땅을 무시한 채 작물을 키울 수 없듯, 사회에서도 성평등 없는 발전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할 것이다. 재생유기농업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혁신적 전환이다. 성평등도 마찬가지로 전통의 부정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일 것이다.
성평등을 실현하는 사회는 개인의 잠재력이 온전히 발현될 수 있는 사회이다. 다양한 삶의 형태와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사회는 곧 모두에게 이로운 사회라 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생태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의 출발점이다. 이제는 단순한 권리 보장 이상의 실천이 필요하다. 재생유기농업이 농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천에서 시작되듯, 성평등 역시 일상과 현장에서부터 구현돼야 한다. 성별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조직의 문화를 바꾸며, 제도적으로 실효성 있는 참여의 장치를 마련하는 것. 이것이 사회적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우리의 실천이다.
토양이 살아야 작물이 자라고, 사람도 건강해진다. 마찬가지로 성평등이라는 사회적 토양이 살아야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공동체가 건강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