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선 충북농업기술원 연구사
사회 전반적인 변화와 함께 농업·농촌 내 성평등 인식은 확대되고 있으며, 특히 정부에서는 여성농업인의 지위 향상, 전문 인력화, 복지 증진을 위해 여성농업인 육성 기본계획 등과 같은 여성농업인 맞춤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해 오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제5차 기본계획에는 '성평등을 통한 여성농업인의 행복한 삶터, 일터, 쉼터'라는 비전을 담아 양성이 평등한 농업농촌 구현 등 4대 전략과 청년 여성농업인 육성 등 16개 정책과제가 추진되고 있다.
이렇듯 양성평등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제도가 시행되고 농촌 여성의 역할과 중요성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지만 우리 농촌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와 성평등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5년마다 이루어지는'여성농업인 실태조사'결과를 살펴보면, 여성농업인은 농사일 중 평균 50.2%를 담당하고 있어 농업 생산에서 주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여성농업인 중 경영주 비율은 23%에 그쳤고, 남성농업인은 100%가 경영주로 조사되었다. 여성이 농업 생산의 핵심 인력 역할을 하고 있지만 경제·경영권은 여전히 남성이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농업인의 노동시간을 비교해 보면, 남성에 비해 농번기에는 48분, 농한기에는 1시간 18분을 더 길게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비농업인의 성별 시간 차이의 2배 이상에 해당한다. 실제 여성농업인의 유병률은 7.1%로 남성 4.6%보다 높았고 근골격계질환 유병률도 6.8%로 남성 4%보다 높았다. 이뿐만 아니라 2018년부터 자연 재난으로 규정된 여름철 폭염에 의해 온열질환자 발생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데, 충북의 경우 전체 질환자 중 농업 종사자는 32%를 차지하고 있어 향후 여성농업인의 온열질환 피해 최소화를 위한 각별한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농사일에 대한 노동 부담뿐만 아니라 가사와 농사일 병행의 어려움 또한 여성농업인이 겪는 큰 고충 중의 하나이다. 생산과 가사 노동의 이중부담 및 농업 보조 인력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여성농업인의 농업경영에 대한 주체적인 참여가 제한적이고, 이로 인해 농촌 지역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낮다고 인식하는 비율은 63.6%로 조사된 바 있다.
이러한 농업·농촌 내 성별 격차를 줄이려면 여성농업인의 지위와 권한을 촘촘하게 보장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복지·교육·문화 정책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 고령의 여성농업인, 귀농·귀촌한 젊은 여성, 이주 여성 등 다양한 여성농업인의 역량을 강화하고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도록 맞춤형 지원이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여성농업인이 출산, 질병 등으로 영농 활동을 잠시 중단하는 경우 농작업과 가사 일을 대행할 수 있는 영농·가사 도우미, 농번기 공동급식, 농작업 편의장비 보급 등 농촌의 일손 부족 해결과 근로여건 개선을 위한 체감형 복지정책이 확대되어야 한다. 특히 여성농업인이 영농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자녀 보육, 방과후 학습지도 등의 농촌형 보육서비스를 제공하고, 도·농 교류사업을 활성화하여 젊은 여성농업인의 농촌 정착을 돕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하던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넘어 이제는 일과 삶이 자연스럽게 융합되는 워라블(Work-Life Blending)이 주목받는 시대이다. 여성과 남성 모두가 일과 삶이 조화롭게 융합된 농업·농촌에서 행복한 미래, 활기찬 미래, 희망찬 미래를 함께 그려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