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서 불안하다.

최하빈 충북충주 중산고2


어릴 때 나는 늘 행복했다. 눈 뜨면 내 옆에 가족들이 있어 주었고, 학교 가려 갈 때마다 항상 조심하고 잘 갔다 오라는 걱정 어린 목소리,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집으로 돌아오면 마음이 가벼워졌다. 문을 열면 반가운 눈빛이 나를 반겨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가족들이 거기 있었다.
그런 날들이 계속될 것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불안했다. 너무 행복해서 불안했다. 괜히 혼자 잠들기 전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언젠가 이 순간이 깨지면 어떡하지?
“어려서 세상을 아직 겪어보지 못한 나이였지만, 그 막연한 불안감은 이상하게 선명했다. 엄마가 웃어도, 아빠가 다정해도, 마음 한구석에 작은 불안감이 자리 잡았다. 행복이 너무 당연해서, 그 당연함이 언젠가 깨져버릴까봐 겁이 났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괜히 가족들 얼굴을 순간순간 기억 속에 담아 놓으려 했다. 언니가 나를 놀릴 때 얼굴, 엄마의 잔소리로 포장된 걱정을 할 때의 얼굴, 필요한 거 있으면 다 말하라고 할 때의 아빠 얼굴, 그 모든 순간이 언젠가 추억으로만 남을까 봐 괜히 마음이 조급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가슴을 조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행복했다. 불안하면서도 행복했다. 행복하면서도 불안했다. 그 묘한 감정 속에서 나는 어린 마음으로 가족을 더 꽉 안았다. 평범한 하루하루를 더 오래 머릿속에 담아두려고 노력했다. 언제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차라리 너무 불행했으면 나중에 이별이 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정말 바보 같은 생각, 아마 나는 어린 마음에 언젠가 누구에게나 올 죽음이란 영원한 이별이 무서웠나 보다. 이러한 잡생각에 잠이 안 들던 밤에 엄마에게 내 생각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엄마는 내게 말했다.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순 없어, 언제 올지도 모르고. 그러니 매일매일을 의미 있게 보내야 하는 거야. 후회하지 않게,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불안은 어쩌면 가족을 더 소중히 여기게 한 선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행복은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매일의 작은 웃음이 감사할 수 있었던 건 그 불안 덕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가족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집으로 걸어갈 때면 마음 한편이 찌르르하다. 오늘 하루도 소중히 살아야겠다고, 조용히 다짐한다.
언젠가 이 순간도 그리워질 테니까.
나는 지금, 이 행복을 더 단단히 껴안기로 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