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느낀 사소함의 의미를 풀어가는 사유의 힘이 돋보여”

전체 산문 응모작 편수와 수준이 높았다. 산문은 일상의 글이다. 생활의 주변과 현장에서 체험하고 느끼는 보통의 시간을 글로 짓는 것인데 올해 응모작은 이러한 산문의 본질에 충실한 글들이 많았다. 글의 수준은 내용의 짜임새와 구조가 결정하는데 사용 ‘어휘’ 또한 글쓴이의 지적 깊이와 확장성을 가늠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산문 응모작들의 어휘력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초중고 입상자 중, 대상과 최우수로 선정된 학생의 작품 4편을 지면상 대표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먼저 대상을 차지한 윤성욱(경북경산 삼성현중 3) ‘사랑해요 나의 아빠 나의 가족’은 우리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어울려 살아가지만 느끼지 못하고 살다 경험하게 되는 ‘부재’를 내용으로 하는 글이다. 평범하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하는 글이다. 아빠가 보낸 늦게 도착한 ‘신발’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아빠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은 가슴을 때리는 슬픔이 있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은 ‘없을 때 슬퍼하거나 후회하지 말고’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알면서 하지 못하는 게 보통의 현실인데 이러한 글을 통해 영원할 것 같은 가장 가까운 가족의 부재의 의미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신발’은 채우지 못한 영원한 그리움이며 아빠의 체온이며 가족의 소중함을 상징하는 매개다. 신발이라는 소재를 그리움과 후회, 사랑으로 상징화하는 능력이 돋보인 글이다. 대상으로 손색이 없다. 평범한 속에 비범함을 부재를 소재로 잘 풀어냈다.

초등부 이지원(서울 문교초 6)의 ‘지켜주는 것이 사랑이야’는 사실적인 생각과 감정의 정직성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초등학생 다운 작품이라는 것이다. 가족들이 직업군인인 외삼촌이 근무하는 부대 근처로 휴가를 가게 되는 일에서 느꼈던 생각이 잘 표현되었다. 본인은 바다가 좋은데 휴가 때만 되면 외삼촌이 있는 포천 즉 육지로 휴가를 떠나는 게 불만이어서 심드렁한데 삼촌과의 대화 속에서 그 불만이 해소되는 장면이 눈부시다.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사랑하기 때문이며 삼촌이 군인이 된 것도 지켜주고 싶어서 군인이 되었고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에서 해소되지 못하고 꽉 막혔던 감정의 물꼬를 트며 화해가 이루어진다. 세상의 모든 사랑의 본질은 ‘지켜주는 것’이라는 보편성을 지원이의 눈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좋은 글이다.

중등부 정진옥(서울 중계중 2)의 ‘봉숭아’도 잔잔한 감동을 주는 글이었다. 할아버지의 병환으로 반찬 가게를 하며 생계를 책임지는 할머니의 붉은 손가락을 중심 소재로 잘 활용하고 있다. 할머니의 손가락은 늘 붉다. 붉은 양념을 만지시기 때문에 씻어도 씻기지 않는다. 섬섬옥수가 아니어서 부끄럽지만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운 손이기도 하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퉁명스러운데 그 퉁명스러운 속에는 사실 할머니 손을 ‘봉숭아’로 물들여 주는 진한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낡은 비디오테이프에서 확인하게 된다. 뒤늦은 진실, 뒤 늦은 후회가 주는 아쉬움 속에 그것을 상쇄하는 더 큰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글이다. 양념에 물든 ‘손가락’과 ‘붕숭아’의 ‘빨간’ 이미지를 병치하여 아름답게 오버랩시키며 글을 풀어가는 솜씨가 일품이다. 후일 작가적 소양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할아버지의 무뚝뚝한 이면의 ‘속정’을 통해 인간관계의 속단과 성급함을 경계하는 교훈도 아울러 갖게 하는 글이었다.

고등부 최하빈(충주 중산고등학교 2)의 ‘행복해서 불안하다’는 간결하지만 전달력이 분명하고 선명한 수준 높은 작품이었다. 우리가 사는 지금 현재의 삶은 사실 당연하게 주어진 일상이 아니다. 즉 당연하지 않은 일상인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대부분 망각하며 살다가 타성화된 감각이 활성화되며 자극이 될 때가 바로 ‘행복한 순간’이다. 행복한 순간은 지속성이 떨어지게 되는데 떨어지는 지속성 때문에 오히려 귀하고 값지게 생각된다. 자주 찾아오지 않는 행복한 순간에 비로소 행복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행복이 사라지게 될 어느 순간과 지점에 대하여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최하빈은 이 순간에 느끼는 어쩌면 당연한 생각을 그렇지만 누구나 쉽게 느끼지 못하고 지나가는 지점을 예민하게 포착, 자신의 생각을 공감력 있게 펼쳤다.

또 다른 입장들의 작품 수준도 높아 최종 선택의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작품의 수준과 소재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요즘 대세인 AI의 영향력이 글쓰기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현실에 대한 우려 또한 컸다. 불편한 진실을 일정 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 위에서 심사를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도 이상 유려하고 매끄러운 글은 안타깝게도 선의의 피해를 감안할 수밖에 없었다. 글이 글일 수 있고 사람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는 이유는 생활 속에서 경험한 일을 정직하게 소통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AI시대라고 하지만 글이 글로서 사람 속에서 영원할 수 있는 이유다. 자라나는 꿈나무들이 여전히 글을 통하여 세상을 보고자 하는 의지가 대견하며 흐뭇했다.

심사위원
유영선 칼럼니스트
강찬모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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