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라 청주시 흥덕구 주민복지과 주무관

▲ 정소라 청주시 흥덕구 주민복지과 주무관

10월의 공기는 유난히 깊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선선한 기운과 함께 익어가는 가을의 향기가 묻어난다. 창문을 열면 스치는 바람이 한결 맑아지고 길가의 나무들은 조금씩 옷을 갈아입는다. 푸른빛을 머금었던 잎들이 노랗고 붉게 물들어 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이 얼마나 정직하게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가을은 늘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한다. 여름의 뜨거움 속에서 앞만 보고 달려오던 걸음을 잠시 늦추고 깊어지는 하늘을 올려다보게 한다. 무언가를 거창하게 하지 않아도 그저 산책길에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아마도 가을은 ‘쉼의 계절’이자 ‘성찰의 계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추수를 끝내고 곡식이 가득 담긴 창고를 바라보며 감사의 기도를 올리던 옛사람들의 모습이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 땀 흘려 일군 밭에서 가을에 결실을 얻는다는 것은 단순한 농사의 과정이 아니라 ‘인내와 기다림의 미학’이었다. 그래서일까. 가을은 언제나 풍요로움과 나눔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풍요는 혼자 누릴 때보다 나눌 때 더 커진다. 배 한 개를 나눠 먹으며 웃는 아이들의 모습, 김치를 담가 이웃과 나누던 정겨운 풍습, 수확한 곡식을 어려운 이웃에게 건네던 따뜻한 마음. 이런 나눔의 모습이 있기에 가을의 풍요로움은 더 빛나고 더 오래 기억된다.
요즘 우리는 예전처럼 이웃의 김치를 얻어먹거나 쌀 한 됫박을 빌려 쓰는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나눔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물질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진심 어린 마음과 온기일지도 모른다. 바쁜 일상 속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관심 하나가 누군가의 마음을 환하게 밝히는 등불이 된다. 나눔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작고 소박할수록 더 큰 울림을 준다.
가을의 낙엽은 떨어지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땅에 스며든 낙엽은 이듬해 봄을 준비하는 거름이 된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베푼 작은 친절, 나눈 웃음과 배려가 언젠가 또 다른 삶의 열매로 돌아와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
10월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계절의 깊이와 더불어 우리 마음도 깊어지고 자연의 풍요로움과 더불어 나눔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창문을 열어 시원한 가을바람을 들이마시며 나는 다짐한다. 내가 가진 것을 조금 덜어내고 마음을 조금 더 내어주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그것이야말로 진짜 가을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지만 동시에 나눔의 계절이다. 내 마음의 열매를 누구와 나눌 수 있을까를 곱씹어 보는 것, 그것이 10월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큰 가르침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오늘을 돌아볼 때, 이 계절에 내가 나눈 작은 온기가 내 삶을 가장 빛나게 기억하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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