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 시집 『시베리안 허스키』 출간
윤현 시인의 시집 『시베리안 허스키』는 인공의 언어를 걷어낸 투명한 문장으로, 상처 입은 세계를 어루만지고 공존의 소망을 노래한다. 시인은 “바람이여”라고 부르며 시작한다. 그 부름은 선언이 아니라 간절한 청원, 이념이 아닌 기도에 가깝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세계와 생명을 포용하는 이 언어의 태도가 시집 전체를 이끈다.
시집은 인간과 자연, 존재와 존재가 서로의 경계를 해치지 않고 스치는 관계를 그리고 있다. 「바람」에서 시적 화자는 “그 무엇도 가두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바람이 농부의 등줄기를 스치고, 아가 새의 솜털을 건드리며, 섬집 아기의 머리칼을 넘겨주는 장면은 생명 간의 따뜻한 순환을 보여준다.
「꿈」에서는 “빗물을 품는 황토”가 되어 새싹을 틔우겠다는 다짐으로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생태적 윤리를 드러낸다.
표제작 「시베리안 허스키」는 인간과 동물의 고통을 같은 사슬로 인식한다. “그곳에서라면”이라는 희망의 조건법으로, 자유의 세계를 향한 염원을 품으면서도 현실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다. 「벌레 같은 놈 1」에서는 “벌레가 사람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겁니까?”라는 질문으로 문명의 우열 질서를 흔들며, 생명 앞에서의 평등과 환대의 윤리를 묻는다.
시인은 “깃털과 풀꽃이 총알과 미사일보다 가치 있는 그곳”을 노래한다. 그곳은 약속된 천상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의 선택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윤리적 태도의 장소다. 가두지 않기, 빼앗지 않기, 서두르지 않기, 나누기 — 이 소박한 원칙들이 윤현 시의 근본을 이룬다.
권혁재 시인은 해설에서 “윤현의 유토피아는 낮이 와도 저물지 않는 검은 달”이라 평한다. 하얀 도화지를 더 하얗게 보이게 하는 검은 달처럼, 그의 시는 어둠 속에서 더욱 또렷이 빛나는 인간과 자연의 연대를 비춘다.
울진 출신의 윤현 시인은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를 좋아하던 유년을 지나, 체 게바라의 삶을 존경하며 자연과 자유를 노래하는 시인이다. 첫 시집 『시베리안 허스키』는 그가 오래 바라온 푸른 세계에 대한 따뜻한 서정의 기록이다.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