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봉 충북도 장애인복지과 주무관

▲ 정용봉 충북도 장애인복지과 주무관㏊

양성평등은 생물학적 성(sex)이 아닌 사회적 역할과 권력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사회적 성(gender)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젠더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불교사상기반의 고려시대까지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그다지 차별이 없었지만, 유학 토대의 조선시대부터 여성 인권은 암흑 길을 걷게 된다.
그 도저한 가부장제의 시절에도 신사임당, 허난설헌, 논개 등 걸출한 여성들이 있었으나 구조적 불평등에 맞서진 못했다. 성평등을 자각하기엔 시기상조였을 것이다.
개화기를 거쳐 근대문물의 세례를 받은 나혜석, 윤심덕 등 20세기초 1세대 신여성들은 문학예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자유연애를 주창한 데 이어 강경애, 박화성 등 2세대 여성작가들이 섬세한 문체로 인간 심리를 천착하며 근대소설의 한 축을 형성하기도 했으나 가부장제 혁파로 향하기엔 시대적 한계의 무게는 엄연했다.
양성평등의 획기적 기원은 1948년 제헌헌법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명문화로 볼 수 있다. 이후 6.25 참화를 딛고 급속한 근대화로 질주하는 과정에서 임금차별, 성차별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노정하며 산업시대에 걸맞지 않은 가부장제 청산과 성차별 해소는 시대의 과제로 부상된다. 시대적 요구에 더해 사회 각계의 분투가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뒤이어 국가적 발전, 민주주의 성숙과 함께 2014년 양성평등기본법이 제정으로 성평등 제도 기반 마련의 화룡점정을 얻기에 이르렀다.
양성평등은 사회 여러 영역에서 목하 실현되는 중이다. 양성평등 추구는 분명히 대한민국의 저력과 경쟁력을 끌어올려 왔다. 남성중심사회를 지양하니 사회, 문화, 경제, 스포츠 등 모든 영역에서 더 큰 활력과 동력이 샘솟고 K-문화, 한류는 21세기 세계의 문화지형을 탈바꿈시키고 있다. 그야말로 백범 김구 선생의 꿈-한없이 갖고 싶은 한 가지는, 높은 문화의 힘-이 만개한 나라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다.
얼마 전 정부 조직개편에서 여성가족부 부처명이 성평등가족부로 변경된 것은 양성간 대립을 지양하고 다양한 계층의 평등을 포괄하려는 의지가 담겼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참에 더 나은 양성평등을 고민해보는 건 어떨까. 최근 통계에서 자살이 우리나라 10대~40대 사망원인 1위라는 발표가 있었다. 전세계를 감동시키는 문화강국 대한민국에 자살률 세계1위(OECD 공식통계)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는 형국이다.
특히 인구 10만명당 남자 자살자(41.8명)가 여자(16.6명)보다 2.5배 많은 현실은 성평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요구하는 듯하다. 지금까지 페미니즘이 성평등 운동을 주도해 왔다면 이제는 쌍방향, 상생적 성평등에 대한 전향적 숙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단군의 ‘홍익인간’에서 동학의 ‘인내천’으로 이어지는 공존과 상생의 정신사적 전통은 중요한 참조점이다. 이 바탕에서 갈등과 분열을 치유할, 시대의 요구에 답하는 양성평등 실현이 종요롭다.
다름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넘치고 사회 신뢰자본과 행복지수는 상승하는 대한민국을 그려보며, 다시한번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양성평등의 전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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