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산, 별과 꽃의 언어로 ‘비움의 미학’을 노래하다
해야 시인이 첫 시집 『달이 떴어』를 도서출판 상상인에서 출간했다.
1973년 『현대문학』 12월호 추천(추천인: 서정주·조병화·신석초)으로 등단한 해야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반세기 침묵의 시간을 넘어, 언어의 근원을 다시 묻는 시적 순례를 선보인다.
시집 『달이 떴어』는 문명의 언어를 비워낸 자리에서 자연과의 조응을 통해 자아를 회복하려는 한 수행자의 여정을 담고 있다. 시인은 “달이/떴어./네가/왔어.”라는 간명한 구절로 시집의 정조를 연다. 행과 행 사이의 여백은 침묵이자 기다림의 틈이며, 언어를 덜어냄으로써 오히려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표제작 「지음知音 1」을 비롯해 ‘산’ ‘별’ ‘꽃’의 연작에서 시인은 자연을 비유의 대상이 아니라 ‘생각의 문법’을 바꾸는 스승으로 세운다. “무게를 더해 주는/산의 무게./무게를 내려 주는/초록의 무게.”에서 보듯, 자연은 삶의 짐을 덜어주는 대신 그 짐을 자각하게 하는 수행의 공간으로 그려진다.
해야 시의 미학은 절제다. “빛은 빛이라서/그림자가 없다.”(「사랑 5」)라는 한 줄에서 시인은 사랑과 존재의 본질을 한 치의 장식 없이 응축한다. 언어의 절제가 곧 의미의 압축이자, 비움이 곧 충만임을 보여주는 문장들이다.
시집 말미의 「꽃」 연작은 고통을 통과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섬세한 깨달음의 세계를 펼친다. “앓고 나면/꽃이 보였다.”는 구절은 상처를 피하지 않고 껴안을 때 비로소 세계가 빛을 되찾는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우대식 시인은 해설에서 “해야의 시는 근대성 이후의 시론이 놓친 동양적 수행의 언어를 복원한 시적 밀교”라 평했다.
시집은 5부 구성으로, 「지음」, 「산」, 「별」, 「사랑」, 「꽃」 등의 연작 80여 편이 수록됐다. 언어의 절제 속에서 존재의 울림을 길어 올린 해야 시인의 『달이 떴어』는 현대시가 잃어버린 ‘침묵의 미학’을 다시 불러오는 한 권의 기도문이자, 존재론적 회복의 기록이다.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