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자 수필가

김애자 수필가
김애자 수필가

10월 25일 43회 충북문학인 한마당 축제가 열렸다. 첫날 단재교육연수원에서 충북문학관 개관식과 함께 시작된 문학인 축제는 다음 날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 전시장으로 이어졌다.

연초제조창이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하여 14회째 열리는 공예비엔날레는 세계적인 규모로 발전하였다. 고인쇄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공예 전문 분야인 비엔날레 장소로 견고하게 틀을 잡았다.

이번 공예전 주제는 ‘세상 짓기’다. 전시는 본전시, 청주국제공예공모전, 초대국가전 태국, 현대 트랜스로컬 시리즈 특별전 등 다양한 섹션으로 구성돼, 세계 72개국 1300여명 작가의 작품 2500여점이 출품됐음을 도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미술전이나 공예전은 혼자서 가야 제대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단체 관람은 여러 명이 해설사를 따라다니면서 대충 훑어보고 나오면 소중한 뭔가가 빠진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그 아쉬움을 보충하는 방법은 화집이나 도록을 구매하는 일이다. 이번에도 데스크를 통해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 도록을 품에 안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도록과 화집은 작품 설명과 함께 작품을 사진으로 기록한 책이다. 1997년에 예술의 전당 전시실을 가득 채웠던 고대 이집트 문명전 화집엔 당시의 신화나 종교, 생활의 지혜를 기록해 놓은 텍스트를 통해 문명의 진화 과정을 소상하게 알 수 있도록 편집되었다.

또 같은 해에 같은 장소에서 열린 레오나르도 다빈치 전시회 때 만든 화집은 6호 크기에 197쪽이나 된다. 나는 지금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서가에 꽂혀있는 이 커다란 화집을 꺼내 본다. 레오나르도가 르네상스 시대에 거장으로 손꼽힐 수 있었던 것은 남보다 부지런하게 사물을 관찰하고 인문학에 관한 독서와 끊임없는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화가란 자연과 대화와의 경쟁 관계”란 말을 화집에서 읽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모든 예술은 자연을 모방한다고 생각해 왔던 나의 고루한 인식을 단번에 깨뜨렸기 때문이다.

팔십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미술관 순례를 통해 30권이 넘는 도록과 화집을 소장하게 된 것은 매우 잘한 일인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작품을 관람했어도 시간이 지나가면 기억 밑으로 침잠하게 마련이다.

이번에 청주공예비엔날레 주제는 ‘세상 짓기’ 네 개의 키워드로 나누었다. 1-보편문명으로서의 공예, 2-탐미주의를 위한 공예, 3-모든 존재를 위한 공예, 4-공동체와 함께 하는 공예다.

이 시리즈 편에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강석영 작가의 ‘무죄’다. 벽면 반쪽을 정사각형 백색 도자기로 채웠다. 눈부시게 순결한 흰색 도자기 편은 온전한 형태는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찌그러지거나 여기저기 구멍이 뚫렸다. 뚫린 구멍은 고향 집 아자살 장지문을 기억에서 꺼내어 작품과 연결시켰다. 밤새 눈이 퍼붓고 난 아침, 손가락에 침을 발라 창호지에 구멍을 내고 밖을 내다보던 내 유년의 기억과 작가의 기억이 상통하는 듯한 느낌이 그럴 수 없이 좋았다.

다만 아쉬운 건 동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성파스님의 ‘명명백백’ 전을 관람하지 못한 점이다. 스님의 작품은 한지 한 장만 걸었다고 한다. 순백의 한지는 길이 100m, 폭 3m다. 이 대작은 머리카락보다 더 가는 닥의 섬유질로 만들었다. 가늘디가는 숫자가 모여 거대한 장이 만들어지는 이것이 ‘하나의 원리’라고 설파했다. 이처럼 “하나가 모두요, 모두가 하나”란 원리의 깨달음만으로도 이번에 산 도록은 제값을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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