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미 충북여성재단 대표
민선 8기 충북도의 첫 비서실장은 여성이었다. 이는 충북 도정 사상 최초의 여성 비서실장 사례로 기록된다. 충북도는 두 번째 비서실장 역시 여성으로 임명함으로써 여성 비서실장이 예외적 사례로 보이지 않도록 했다. 유리천장이 약화되고 있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리더를 보좌하는 자리에 여성들이 기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충북 민선 8기 도정이 여러 혁신적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인사 혁신 역시 주목할 만하다.
여성이 리더가 되기 어려운 한 이유를 단순화해서 말하면 상사가 남성이기 때문이다. 밀착해서 일해야 하는 자리에 여성 부하직원을 두지 않으려는 남성 관리자들이 있다. 이들은 여성 부하직원을 두면 편하게 보좌받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전에 방지한다는 이유로 여성 부하직원을 두지 않는다. 리더를 가까이에서 지원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보고 배우는 경험을 하지 않은 여성이 리더의 자리에 가기는 쉽지 않다.
최근 정치권에서 불거지는 의혹 제기 식의 논란을 보면서 여성들이 공적인 영역에서 생존하기 참 어렵다는 생각을 다시금 한다. 남성 정치인의 오랜 보좌진으로 일해온 여성 직원이 근거 없는 의혹에 휩싸이고,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마치 사실처럼 퍼진다. 증거는 없지만 ‘오랫동안 가까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의 전문성과 공적 역할은 의심의 대상이 되고, 너무 쉽게 사적인 관계의 방식으로 이야기에 소환된다. 이때 공격의 표적은 권력이 아니라 ‘그 곁의 여성’이다.
이런 현상은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 언론사, 시민단체 등 여러 조직에서도 같은 구조가 작동하는 상황이 목격된다. 남성 상사가 차석에 해당하는 직속 부하직원 자리를 여성으로 두거나, 여성 부하직원에게 관심을 갖고 끌어주는 경우 “둘이 혹시 사적인 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쉽게 따라붙는다. 그런 시선은 남녀 모두에게 부담이 되지만, 특히 여성에게는 치명적이다.
그 결과, 여성 후배를 가까이 두지 않으려는 남성 상사들이 있다. 회식 자리, 출장, 개별 면담을 피하고, 중요 정보나 경험이 오가는 비공식적 네트워크에서도 여성을 배제한다. 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나는 아내가 아닌 여성과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 개인의 도덕적 신념처럼 들리지만, 여기에는 여성과의 교류를 피하는 성차별적 기제가 들어있다. 성희롱과 같은 직장 내 윤리 문제를 피하고자 여성을 위험요인으로 간주하며 배제하는 대응의 방식이 들어 있다. 그렇게 ‘펜스룰’이 강화되고, 추문 공포는 여성의 성장을 막는 장치로 굳어진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경력은 정체되고, 조직의 다양성은 약화된다. 여성은 능력보다 ‘오해받지 않을 거리두기’를 먼저 계산해야 하고, 남성은 ‘괜히 문제 될까’ 하는 불안으로 여성 인력에 대한 지원이나 활용을 회피한다. 추문이 퍼질 수 있는 환경은 언제나 진실보다 흥미를, 공정보다 의심을 우선시한다. 그 틈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여성의 자리는 더 좁아진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문화가 결국 여성의 자기검열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여성 스스로 “괜히 눈에 띄면 오해받을라” 하며 주저하게 되고, 조직의 중심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렇게 조직은 능력 있는 여성의 부재를 “여성 스스로 뒤로 물러난 결과”로 오해하지만, 실제로는 추문 공포가 만들어낸 구조적 퇴행이다.
여성이 리더로 성장할 수 있기 위해서는 조직의 문화적 성숙이 필수적이다. 일을 일로 이해하는 것이 기본이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가 테이블 위에 올라오지 않도록 쳐대는 조직구성원의 따끔한 눈과 입이 필수적이다.
인재는 조직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좋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이는 작은 조직에서도 국가와 같이 더 큰 정치적 환경에서도 마찬가지다. 말 같지 않은 의혹제기를 따끔하게 잘라내는 눈과 입이 여성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환경을 만든다.
다시금 충북도 민선 8기 인사 혁신을 떠올려 본다. 통념과 관행을 깨고 원칙에 기반해 공정성을 실현하는 결단은 조직의 문화적 성숙을 도약시키는 계기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