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시인

▲박용진 시인
▲박용진 시인

화(火)는 부당한 대우와 위협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다.

매스컴과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분노를 유발하는 행위를 쉽게 접하면서 도덕적 분노(moral outrage)가 증가하는 사회다. 타인의 도덕적 위반을 목격하며, 내 도덕적 기준이 타인과의 불일치하는 괴리와 관계 갈등에서 유발되는 피로는 일상을 매우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

직장에서든지, 가까운 인간관계에서 주관적이고 자기감정에만 충실한 이기주의의 만연에도, 타인의 이상행동은 나의 반영(反映)일 수도 있다며, 억지 해석하거나, 인내해야 하는 현실에서, 내적으로 쌓이는 화기를 처리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만나기도 한다.

비상식적인 상태와 이에 대한 변화를 바라보며, 비포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아서 때론, 주변을 초토화 시키기도 하는, 화를 내는 행위는 내분비 계통에 이상이 생기게 하여, 혈압과 심박수가 증가한다. 자주 화를 내게 되면 뇌 왼쪽 반구의 활성화와 변경이 생겨 좌측 전두엽 기능의 저하로 뇌가 쪼그라들게 되는 기능장애가 생겨, 더 많은 화를 내게 된다.

화를 내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1980년대 말, 네덜란드의 유전학자 한 브루너 박사 말에 의하면 인간의 감정을 좌우하는 화학물질 중 하나인 세로토닌은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하는 물질이지만 이것이 제대로 분해되지 않으면 오히려 기분이 나빠진다고 했다. MAOA 유전자는 여분의 세로토닌을 지우면서 평상심을 되찾는 데 도움을 주는데 MAOA 유전자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 분노 조절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업무처리의 과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스트레스로 짜증을 내거나 화기가 치솟는 경험은 누구나 한다.

입적하신 틱 낫한 스님은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라도 내 잘못은 어느 정도 있다."라고 하셨다. 관계성은 상호 간의 호환으로 이뤄지며 의견의 대립은 늘 있게 마련이다.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의 잘못이라고 단정 짓기는 힘이 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무 심한 타인의 행위에는 화를 낼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으며, 실제로 화를 내는 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인 세네카는 저서 <화에 대하여>에서 화는 비합리적인 몸의 반응이며, 치유책으로는 '유예'를 제시했다. 먼저 화난 자신을 인식한다. "아, 내가 화가 많이 났구나"라며 알아챔 만으로도 어느 정도 조절이 된다. 불길같이 활활 타오르는 화기를 일단 미룬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식으면서 마음도 변하게 된다.

필자를 가르치신 수초 스님은 "화가 나더라도 화를 내지 말고 할 이야기만 하여라".라고 하셨다. 맞는 말씀이어서 늘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꼭 이렇게 하는 게 맞다.'라고 판단하지만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상황과 가치의 변화로 '꼭 그렇지만은 않다.'라고 바뀐 상태를, 우리는 자주 경험한다. 꼭 ~해야 한다.라는 당위적인 사고가 맞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화'는 다음을 위한 간격에서 일으키는, 과정이며 숨긴 표상의 제시다. 어느 만큼 화를 내야 하는지, 그에 대한 수위는 정해진 게 없지만 사람들에 대하여 자신과 격이 다르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화'의 씨앗은 잉태된다.

소통의 단절과 분노조절 장애자의 묻지 마 범죄는 해마다 늘어가는 추세다.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화기를 조절하는 현명한 지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화'의 한자(火, 禍, 和)를 보더라도, 불길로 치솟아서 재앙을 가져올 화를 잠재우면서 화합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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