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성 수필가
해는 만물의 근원이다. 농작물도 햇볕을 받고 자란 작물과 그렇지 못한 작물과는 천양지차다. 인간 생활이나, 생명을 가진 만물에게 햇살은 곧 생명(生命)인 것이다.
어느 부족 국가에서는 아침 해가 뜨기 전 모든 마을 사람이 ‘오늘도 변함없이 해가 뜨게 해달라’는 원념(遠念)을 담아 해가 뜨는 동녘 하늘을 향해 풍악을 울리고 나아가다가, 해가 솟은 후(後)에야 마을로 돌아와 아침을 먹은 후 그날의 일상생활을 시작한다고 한다.
나는 1978년부터 1984년까지 6년간 진천 백곡초등학교 명암분교에서 주임으로 직원 3명과 함께 학교생활을 하였다. 분교장으로서 나름대로 사명감을 갖고 학교를 책임지고 학부모들과 유대관계를 맺어 가며 전교생 어린이들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하였다.
그리고 나는 명암분교 6년간의 교단생활을 ‘조그만 뜨락에도 햇살 하나 가득’이란 제목의 수기(隨紀)로 작성하였다.
그 후 명암분교를 떠나 교사(敎師)에서 교감(校監), 교감에서 장학사(獎學師) 시험을 거쳐 영동 교육청, 청주교육청 장학사로 근무하였고, 진천 학성초 초임 교장에서 1년 후 청주 원봉초 교장을 거쳐, 청주 사직초, 동주초 교장으로 근무하였다.
그러다 62세 정년을 앞둔 동주초 교장 시절, 교육인적자원부 전국 교단수기 공모에 예전 명암분교 재직시절 써놓은 수기를 응모하여 입상 작품으로 뽑히는 영광(榮光)을 안게 되었다.
그 해 전국 초·중·고교에서 뽑힌 17명의 작품이 교육인적자원부 교단 수범사례 수상 작품집으로 발간(發刊)되어 각 학교에 배부되었으며, 나는 그 작품집과 함께 교육부로부터 교육부 장관 표창을 받게 되었다. 나의 고장 진천에서도 나의 수범사례를 ‘진천신문’에 몇 회에 걸쳐 연재하여 실어 진천에 배포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충청북도에서 사회공헌 유공 교원으로 뽑혀 대통령 표창까지 받게 되었다.
특히 지금도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2004년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수상 작품집을 발간할 때 작품집 표제가 내 수기 제목인 ‘조그만 뜨락에도 햇살 하나 가득’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하늘이 내게 준 은총(恩寵)이었다고 생각한다.
팔순을 지나 여든한 살은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라 하여, 망구(望九)라 한다. 88세를 미수(米壽), 99세를 일백(百) 백(百)자에서 한 일(一)자를 빼 백수(白壽)라 한다.
연세대 철학과 교수였던 김형석 교수는 105살의 연세에도 신문에 칼럼을 써 가며, 나이는 오직 숫자에 불과함을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삼일수심 천재보(三日修心 千載寶) 백년탐물 일조진(百年貪物 一朝塵)’이라고 ‘3일 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가 되고, 100년 동안 탐한 재물은 하루아침에 티끌이 된다.’고 하였다.
어디쯤 왔는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는 老年의 길...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은 오늘처럼, 세월은 무심하게 사람들을 그냥 말없이 데리고 가고 있지 않은가.
매일 아침 변함없이 아침 해가 뜨게 해달라고 염원(念願)하던 어느 부족 국가들과 그 옛날 근무했던 명암 분교장 생활을 떠 올리며, 우리들 모두의 가슴에 생명(生命)의 원천(原泉)인 ‘햇살 하나 가득’, 우리 이 세상 모두에게 밝은 빛을 내려 달라고, 나는 두 손 모아 염원(念願)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