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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희 평전 / 불꽃으로 타오른 민족혼<16>
조명희 평전 / 불꽃으로 타오른 민족혼<16>
  • 김명기 기자
  • 승인 2015.09.20 1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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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최초 창작시집 ‘봄 잔디밭 위에’ 발간
▲ 포석이 1924년 6월 15일 한국문학사상 처음으로 발간한 창작 시집 ‘봄 잔디밭 위에’의 표지.

(김명기 동양일보 기자) 1924년 조선 문단에는 한국 문학사적으로 새 지평을 여는 일이 생긴다.

그해 6월 15일 포석이 한국 문학 최초의 창작 시집인 ‘봄 잔디밭 위에’를 발간하게 된 것이다.

춘추각에서 발간한 봄 잔디밭 위에(30)는 포석이 동경에 유학을 떠난 1919년 5년 동안 창작한 시들, 구체적으로 말하면 1920년부터 1923년 전반기까지 ‘로적(蘆笛)’의 필명으로 쓴 시들과, 1923년 후반기부터 ‘포석(抱石)’의 필명으로 창작한 100여편의 시를 아우른다. 그중 표제로 뽑은 포석의 시 ‘봄 잔디밭 위에’를 한 번 감상해 본다.

 

봄 잔디밭 위에 - 포석 조명희

내가 이 잔디밭 위에 뛰노닐 적에 / 우리 어머니가 이 모양을 보아주실 수 없을까 //

어린 아기가 어머니 젖가슴에 안겨 어리광함 같이 / 내가 이 잔디밭 위에 짓둥글 적에 / 우리 어머니가 이 모양을 참으로 보아주실 수 없을까. //

미칠 듯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여 / “엄마! 엄마!” 소리를 내었더니 / 땅이 “우애!” 하고 하늘이 “우애!” 하옴에 / 어느 것이 나의 어머니인지 알 수 없어라.

 

‘내가 이 잔디밭 위에 뛰노닐 적에’ 이 모양을 보아 주셨으면 하고 바라는 ‘우리 어머니’는, 화자(話者)가 ‘어린 아기가 어머니 젖가슴에 안겨 어리광함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봄 잔디밭 위를 뛰노니는데 ‘이 모양을 참으로 보아주실 수 없을까’라고 묻는다.

어머니가 보아주기 않을지도 모른는다는 절망감에 ‘미칠 듯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여 “엄마! 엄마!” 소리를 내었더니’ 땅이 “우애!” 하고 하늘이 “우애!” 한다.

잔디밭에 뛰노는 화자를 보아주는 어머니가 있다는 것까지는 알게 됐는데, ‘우애’ 하고 우는 땅이 나의 어머니인지, ‘우애’ 하고 우는 하늘이 나의 어머니인지 알 수는 없다.

여기서 이 시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어머니’다. 어머니라는 객관적 상관물(31)이 지칭하는 것이 무엇이며, 이러한 감정 이입을 통해 시인은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느냐를 살펴보아야 한다. 만해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에서 ‘님’이 지칭하는 것을 ‘조국’이나 ‘절대자’로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포석의 시 ‘봄 잔디밭 위에’에서 ‘어머니’가 지칭하는 것 또한 식민지배하에 신음하는 ‘조국’으로 읽힌다.

‘어머니’라는 시그니피앙(32)을 ‘조국’이라는 시그니피에로 외연을 확대해 보면 그렇다.

잔디밭 위에서 어린 아기가 어머니 젖가슴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듯 뛰놀고 짓둥글고 하는 ‘나’는 주권을 잃어버린채 일제 식민지배하에 살아가고 있는 민중들이요, 부재(不在)한듯 보이는 어머니, 그러나 ‘미칠 듯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여’ 엄마를 불렀더니 “우애!”하는 땅과 하늘은 힘없는 조국이다.

포석이 쓴 초기의 시들을 두고 타고르의 영향을 받아 ‘범 우주적’ 시 세계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이들고 많고 그 해석이 일정한 논거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지만, 그의 가슴 깊은 곳에 늘 용암처럼 꿈틀대며 살아있던 ‘조선의 독립’에 대한 신념이 마치 ‘숙명’처럼 어린 시절부터 발아돼 그 싹을 키우고 무성한 잎을 내놓았다면 해석의 폭을 다양하고 넓게 가져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 1990년 4월 향토문화의 연구 시리즈 8번째로 ‘포석 조명희 특집’을 펴낸 ‘뒷목’ 19집 표지.

민병기 시인(전 창원대교수)은 1990년 4월 ‘뒷목’ 19집으로 발행된 포석 조명희 특집에서 ‘망명작가 조명희론’을 통해 포석의 생애와 시 작품에 대한 분석을 내놓았다.

민 시인은 ‘경이’와 ‘성숙의 축복’, ‘봄 잔디밭 위에’ 세 편을 ‘모성애적 상상력’의 범주에 포함시키며 타고르의 시 ‘기탄잘리’에 심취해있던 포석의 시적 변모가 타고르의 영향을 받아 어떻게 변화됐는지 그 특징을 살피고 있다.

 

위 3편의 시에는 모두 어머니가 등장한다. 어머니의 이미지는 그의 시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 파악은 귀국 후에 씌어진 시편들에 나타나는 새로운 경향을 이해하는데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이미지는 후기 시세계의 신비를 푸는 열쇠로 볼 수 있다.

외연적 의미상으로는 다르지만 내포적 의미상으로 보면 어머니와 유사한 의미를 머금고 있는 시어가 ‘그대’와 ‘당신’이다. 이러한 단어까지 포함시킨다면 어머니의 이미지는 종교의 의미와 모성애적 의미, 우주적 의미·대지적 의미·천상적 의미·생명에 대한 근원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 민병기 ‘망명작가 조명희론’, 1990년 4월, ‘뒷목’ 19집.

 

포석의 시집 ‘봄 잔디밭 위에’는 국문학사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다. 최초의 창작시집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개별의 시와 시집이 다른 것은 시가 그 시인의 삶과 세계관 등을 단선적이고 단면적, 부분적으로 보여준다면, 시집은 그 시인의 삶과 세계관 등을 중첩적이고 심층적,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하나의 시집엔, 그 시인의 총체적인 삶과 가치관과 세계관이 녹아있다.

 

(30) 봄 잔디밭 위에

1924년 6월 춘추각 간행, B6판. 목차와 서문, 간지 19면을 합쳐 총 120면으로 구성돼 있다.

책머리에 범부(凡夫)의 ‘서문’, 저자 자신의 ‘머리말’과 함께 43편의 작품을 3부로 나누어 편성하고 있다.

1부 ‘봄 잔디밭 위에’에는 ‘성숙(成熟)의 축복(祝福)’ 등 14편, 2부 ‘노수애음(蘆水哀音)’에는 ‘떨어지는 가을’ 등 8편, 3부 ‘어둠의 춤’에는 ‘별 밑으로’ 등 22편을 수록하고 있다.

자서(自序)인 ‘머리말’은 11면에 달하는 장문(長文)으로 저자 자신의 시론(詩論)의 일단을 전개하고 있다.

자서의 말미에서 저자는 시집이 나오기까지의 경과와 편성 내용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그 내용의 첫째는 여기에 수록된 43편의 시작보다도 훨씬 많은 분량으로 기획했었는데,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시대적 제약으로 수십 편을 제외시켰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점에 대해서 무척 안타까워하고 있다.

둘째는 그 편성 내용에 대한 것으로, 1부 ‘봄 잔디밭 위에’의 시편들은 고향에 돌아와서 쓴 근작시(近作詩)이고, 2·3부의 ‘노수애음(蘆水哀音)’과 ‘어둠의 춤’의 시편들은 동경 유학 시절에 쓴 습작품(習作品) 중에서 가려 뽑은 것이라고 한다. 비록 이들이 습작품이긴 하지만, 그 가운데는 영혼(靈魂)의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분된 각각의 부마다 사상과 시풍(詩風)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하여, 그것을 저자는 ‘선(線)’으로 표현하고 있다.

초기작 ‘노수애음’의 시편들은 불투명하고 거칠지만 ‘흐르는 곡선(曲線)’의 일관성과 ‘어둠의 춤’의 시편들은 ‘굵은 선’의 단속(斷續)으로 점(點)과 각(角)의 일관성으로 각각 특색화할 수 있다면, 근작시 ‘봄 잔디밭 위에’의 시편들은 ‘그쳤던 곡선’, 그러니까 초기와는 다른 곡선이 새로 물리어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저자에게 시는 ‘마음의 역사’, 인간 ‘영혼의 발자취’로서 애상과 회고적(懷古的)인 정서를 환기하기도 하지만, 시대현실과 맞부딪치는 응전적인 강렬한 격정(激情)으로 토로하기도 했다.

 

(31)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

객관적 상관물은 감정을 객관화하거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공식 역할을 하는 대상물’을 말한다.

엘리어트는 객관적 상관물에 대해 “어떤 특별한 정서를 나타내도록 제시된 외부적 사실들로, 구체적인 사물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정서를 환기시키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술 형식으로 정서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객관적 상관물의 발견, 즉 어떤 특별한 정서를 나타낼 공식이 되는 일단의 사물, 정황, 일련의 사건들을 찾아내는 것이며, 이것은 독자에게 똑같은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시인의 감정을 객관화하거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공식역할을 하는 ‘대상물’을 객관적 상관물이라 하는데, 이는 특별한 정서를 나타내도록 제시된 ‘외부사실들’로 구체적인 사물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정서를 환기시키게 된다.

 

(32) 시그니피앙, 시그니피에

시그니피앙은 기호, 시그니피에는 개념이다. 우리들이 ‘들국화’라고 표시하면 이 ‘들국화’라는 언표(言表)가 시그니피앙이다.

시그니피에는 개개인이 시그니피앙을 듣거나 보았을 때 딱 떠오르는 이미지, 언의(言意)다.

들국화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을 떠올리는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은은한 향기를 떠올릴 수도 있고, 가을을 떠올릴 수도 있고 처연함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시그니피앙은 공유하지만 너의 시그니피에와 나의 시그니피에는 공유할 수 없다.

이것의 기원은 스위스의 언어학자 소쉬르가 그의 대표적 저서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주장한 언어학적 용어로부터 출발한다. 소쉬르는 언어를 이원적으로 인식하였는데, 랑그(langue)와 파롤(parole)이 그것이다. 랑그는 일종의 ‘사회적 사실’로, 집단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기호목록이다. 시그니피앙과 맥락이 닿아있다.

파롤은 공유하고 있는 기호목록을 실제로 사용하는 행위, 다시 말해서 공유하고 있는 사전에서 특정요소들을 선택하여 발화(發話)해 내는 개인적인 행위를 말한다. 시그니피에와 맥락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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