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農心은 밥심’… 30년간 충북농협 입맛 책임져

[동양일보 조석준 기자]“그저 동료들과 함께 묵묵히 제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 과분한 관심을 가져주셔서 쑥스럽고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돌이켜보면 1991년부터 지금까지 사용한 쌀의 양만도 무려 72t에 달하니 지난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꽤 많이 나가네요. 그동안 충북농협의 따뜻한 배려와 가족이나 다름없는 동료들이 있었기에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몸이 허락할 때 까지 사랑과 정성이 가득한 행복한 밥상을 계속 차리겠습니다.”

농심農心은 곧 밥심이란 생각으로 30년째 농협충북본부 임·직원들의 입맛을 책임지고 있는 유영호(66·사진·충북 청주시 서원구 구룡산로 23·☏043-229-1555) 조리장은 집 밥처럼 정갈하고 맛깔난 음식으로 지역본부 구내식당을 ‘성화동 맛집’으로 불리게 한 장본인이다.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난 유 조리장은 초등학교 때 부모님을 따라 청주내수에 정착했고, 1977년 결혼해 남편과 두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중 우연히 동네 지인의 소개로 농협충북본부 구내식당에 첫 발을 내딛었다. 당시 서른여섯의 나이에 이미 이웃들 사이에선 손맛 좋기로 소문날 정도로 음식을 잘했던 그였지만 각종 재료준비와 수북이 쌓인 설거지 등을 도맡아 해야 하는 구내식당 일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특유의 근면성실함으로 빠르게 적응해 나갔고 여러 조리기술을 익히게 되면서 "어떻게 하면 열심히 일한 농협직원들에게 좀 더 맛있는 밥을 지어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조리자격증이나 전문지식이 전혀 없었기에 그저 손끝 하나로 구슬땀을 흘려야만 했다. 결국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기본 육수와 조리 순서, 익힘 정도, 음식을 먹기 전까지의 온도 유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장 이상적인 조리법을 터득하기에 이르렀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의 조리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따뜻한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웠던 직원들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특히 30년 내공이 깃든 오징어국과 동태찌개, 청국장, 된장 등 국물요리는 누구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만큼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유 조리장이 긴장해야만 할 때가 있다. 바로 농협중앙회장의 방문이나 충북도내 65개 조합장 워크숍, 주요 기관장들이 모이는 목요경제회의 등 내·외부 고위급 인사들이 찾는 행사다. 이미 밖에서도 맛집으로 알려진 터라 잔뜩 기대를 하고 오기 때문에 더욱 부담일 수밖에 없어 행사 일정이 잡힌 날부터 식단구성을 고민하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다.

사실 유 조리장의 숨은 노력 뒤엔 남모를 고통이 있다.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꼬박 6시간을 서서 100인분 이상의 밥과 반찬을 만들고, 나르느라 척추관 협착증을 앓게 돼 1주일에 2~3차례 병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오랜 기간 음식을 조리하다 보니 따로 계량을 하지 않아도 손이 기억하더군요. 재료가 볶이거나 끓는 정도만 보고도 음식의 간이나 익은 정도도 알 수 있게 됐죠. 음식은 무엇보다 최적의 온도를 유지했을 때 가장 맛있기 때문에 식사시간에 맞춰 갓 조리한 음식을 내놓고 그것을 즐겁게 먹는 모습에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다만 식재료 값이 많이 오르면서 더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매우 아쉽습니다.”

가족으로 남편 홍장수(73)씨와 재익(44·삼성전자연구원)·재윤(41·현대자동차) 형제가 있다.

농협충북본부 직원상조회가 운영 중인 이 구내식당은 유 조리장을 비롯해 왕수지(36) 영양사, 안순기(63) 조리사 등 모두 3명이 하루 평균 100~130인분의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으며, 한 끼에 6000원(정규직)과 4500원(계약직)의 저렴한 식대를 받고 있다. 글·사진 조석준 기자

30년째 농협충북본부의 입맛을 책임지고 있는 유영호(가운데) 조리장이 구내식당 동료, 농협 직원들과 환하게 웃으며 기념촬영 하고 있다.
30년째 농협충북본부의 입맛을 책임지고 있는 유영호(가운데) 조리장이 구내식당 동료, 농협 직원들과 환하게 웃으며 기념촬영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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