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역전마라톤대회 9연패 대기록 달성

(동양일보 조석준 기자) “충북이 처음 역전마라톤에 출전했을 땐 ‘제발 꼴찌만 면해 보자’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고군분투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충북이 전국을 호령하는 중장거리의 메카로 자리매김 했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롭네요. 9연패 달성이라는 대기록을 위해 묵묵히 따라준 선수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지난 16일 부산을 출발 22일 경기도 임진각까지 532.9km를 달리는 60년 전통의 경부역전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하며 이 대회 통산 19승, 9연패 달성으로 충북육상의 전설을 이어가고 있는 엄광열(54) 충북육상경기연맹 전무이사(청주시청 감독).

엄 전무는 충북 진천출신으로 진천중 2학년 때 교내 체육대회에서 육상부 선수를 이기는 등 타고난 운동신경을 눈 여겨 보던 당시 체육교사였던 이종찬 충북육상경기연맹 부회장의 눈에 띠어 육상선수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1980년까지 실업팀인 동양나이론에서 활약했으나 고질병인 무릎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일찍 마감하고 충북체육회 육상순회코치로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엄 전무는 이번 경부역전마라톤대회를 준비하면서 선수들의 마시는 물과 식단까지도 꼼꼼히 챙겼다. 선수들에게 절대 현지의 다른 물을 못 마시게 했고 소화와 컨디션 유지에 좋은 초정탄산수만 먹일 정도로 세심한 부분까지도 신경 썼고 선수들을 위한 일이라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상대팀의 전력을 분석해 그 팀의 구간전략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비하는 등 치밀한 전략을 세웠고 선수들의 컨디션과 성향을 면밀히 파악해 각 구간별 최상의 카드를 꺼내 들었던 것이 주효했다.

주로전담과 구간전략을 담당하는 코치부터 식사와 잠자리를 책임지는 코치까지 체계적인 코치전담제를 운영해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맘껏 기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또, 코치들 모두가 엄 감독의 제자들로 구성돼 있어 눈빛만으로도 모든 일을 일사분란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경기 중엔 극도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어 코치들을 선수들보다 더 혹독하고 모질게 대해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오늘의 영광은 어느 누구의 것만이 아닌 선수와 코칭스태프, 충북육상연맹 임원들의 땀과 열정, 단결력으로 일궈낸 값진 결과물입니다.”    

충북대표팀은 대회전부터 경부역전의 ‘어벤저스’로 분류됐다. 우승 0순위로 타 시·도의 시기와 집중 견제를 받아왔다. 세계 최강 한국양궁을 견제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기방식을 바꾸듯 이번 대회부터 출신 고등학교를 연고지 기준으로 삼아 출전시키는 등 경기규정을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충북의 건각들은 전혀 흔들림 없었다. 전국체전 2관왕에 빛나는 ‘에이스’ 손명준(20·건국대)과 구간신기록을 2개나 세운 신현수(23·한국전력)·김성은(25·삼성전자), 슈퍼루키 안병석(18·단양고)에 이어 류지산(27·청주시청), 정호영(29·청주시청), 정형선(29·수자원공사) 등을 앞세워 승승장구 했다.

충북은 기량이나 전략, 선수관리 등 어느 것 하나 상대팀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월등히 앞서면서 경부역전마라톤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갔다.

엄 전무는 “충북육상경기연맹의 잔여 임기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전설을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라며 “이렇게 훌륭한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충북에 마라톤 팀이 창단돼 황영조나 이봉주 선수처럼 올림픽 등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를 육성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캡틴충북’ 엄 전무의 어벤저스 사단이 국내 최강을 넘어 국제대회에서의 새로운 신화창조를 위한 초석을 다지는데 도민들의 아낌없는 격려와 사랑이 필요하다.

가족으로 마라톤 국가대표 출신인 부인 안영옥(50)씨와 2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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