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하느님 사랑·자비 전할 것”
주일교사하며 '사제의 꿈' 키워
"모두 함께 공존하고 행복해야"

김종강 시몬 주교

[동양일보 김미나 기자]

이웃의 삶 속에 동고동락하며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전하겠습니다


4대 천주교 청주교구장에 김종강(57) 시몬 신부가 지난달 19일 임명됐다.

천주교의 주교를 뜻하는 교구장은 카톨릭에서 일정한 지역 단위의 교회를 다스리는 성직자로 로마 교황청에서 직접 임명한다.

청주교구는 제천시와 단양군을 제외한 충북지역 일원 천주교를 관할하며 역대 교구장은 초대 제임스 파디 주교, 정진석 주교, 장봉훈 주교로 김 신부는 청주교구 출신 2번째 주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법에 따라 지난 1월 만 75세로 사의를 표명한 장봉훈(75) 가브리엘 주교를 이을 다음 주교로 김 신부를 임명했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관리국장으로 일하던 김 신부는 주교 임명 후 지난 2주간의 피정(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 등에서 묵상이나 기도를 통해 자신을 살피는 일)을 마치고 최근 고향인 청주교구로 돌아왔다. 주교서품 및 착좌미사는 다음달 2일 내덕동 주교좌 성당에서 거행된다.

김종강 시몬 신부
김종강 시몬 주교

 

“지난 3월 초, 주 교황청 한국 대사관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교황님 친서를 앞에 두고 ‘청주교구의 주교로 임명하시고자 하는데 수락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죠. 답을 하기 너무 어려웠지만 하느님의 뜻이라 여기고 받아들였습니다. ‘네’라고 답은 했지만 그 때부터 얼마간은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이것이 바로 신앙 안에서 하느님의 용기라는 걸 떠올렸습니다. 하느님의 용기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다른 말이라고 이해하면서 조금씩 평화로워졌죠.”

김 주교는 전임 장봉훈 주교와 특별한 인연으로 사제의 길에 접어들었다. 오창읍 가곡리가 고향인 김 주교는 고등학교 때까지 가곡 공소(본당보다 작은 교회 단위로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곳)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청주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이후 처음으로 본당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했던 김 주교는 당시 내덕동 주교좌 성당 주임신부였던 장 주교를 보면서 사제의 꿈을 키웠다.

“공소 출신이다 보니 본당 신부님에게 직접 교육을 받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 수 있다는 것을 청년이 되고서야 처음 느껴봤죠. 가브리엘 신부님(장 주교)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정말 특별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이라 생각했습니다. 신부님께서 먼저 신학교 입학을 권하기도 하셨지만 당시 저도 신학교에 가고 싶었어요. 그 때 4명의 친구들이 함께 신학교에 입학했는데 모두 중도에 포기하고 저만 평생 사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김 주교는 증조부 때부터 신앙을 이어온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큰아버지가 가곡 공소회장이었던 덕분에 6남매였던 김 주교와 형제들은 신앙이 일상이었던 삶을 살았다.

오창중과 신흥고를 졸업하고 청주대에 입학했지만 1987년 대구가톨릭대에 다시 입학한 김 주교는 1996년 6월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청주교구 서운동 본당, 흥덕 본당 보좌신부, 학산 본당 주임신부를 지냈다.

2001년~2006년까지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교회사를 전공했고 2005년~2010년까지 한국인 최초 로마 교황청립 성바오로 국제선교신학원 부원장을 역임했다.

귀국 후 청주교구 청소년사목국장, 계명 본당 주임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관리국장을 맡았다.

“코로나19와 경제적 위기로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상처받은 사람들의 깊은 내면 안에서 위로하고 계시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코로나19로 서로 거리두기를 하고 살았음에도 우리는 서로를 전염시키며 살았습니다. 이는 우리가 결코 떨어질 수 없이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죠. 혼자일 수 없다는 것, 혼자만 행복하고 혼자만 건강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절감했잖아요. 모두 함께 행복하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향해 걸어가겠습니다.” 글·사진 김미나 기자 kmn@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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